산전검사에서 장애를 놓쳤다면 — ‘원치 않은 출생’ 소송에서 인정되는 손해와 인정되지 않는 손해
임신 중 기형아 검사와 정밀 초음파를 받으며 "정상"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아이가 장애를 안고 태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는 "검사만 제대로 했어도 미리 알고 결정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사건은 일반 의료사고와 손해의 구조가 달라,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와 인정하지 않는 손해를 먼저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 의료사고와 무엇이 다른가
보통의 의료사고는 의사의 잘못이 환자의 몸에 새로운 손상을 만듭니다. 그런데 산전검사에서 장애를 놓친 사건에서는 장애가 의사의 잘못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태아에게 이미 있던 것입니다. 의사의 잘못은 '미리 알 기회'를 빼앗은 데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부모가 내는 소송을 '원치 않은 출생(wrongful birth)', 아이 본인이 내는 소송을 '원치 않은 삶(wrongful life)'이라고 부릅니다.
대법원이 인정하지 않은 두 가지
대법원 1999. 6. 11. 선고 98다22857 판결은 기형아 검사를 부탁해 혈액검사 등에서 정상이라는 말을 들었다가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은 사건을 다뤘습니다. 대법원은 먼저 다운증후군이 당시 모자보건법령이 정한 인공임신중절 허용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의사가 더 정확한 검사 방법을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부모의 '적법한' 낙태결정권이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아이 본인의 청구에 대해서는 장애를 갖고 출생한 것 자체를 인공임신중절로 출생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법률적으로 손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장애 때문에 치료비가 더 들더라도 그 장애 자체가 의사나 다른 누구의 과실로 생긴 것이 아닌 이상 청구할 수 있는 손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양육비는 손해로 보지 않는 흐름
제왕절개 때 함께 하기로 한 불임수술을 병원이 하지 않고 알리지도 않아 아이가 태어난 사건에서 서울고등법원 1996. 10. 17. 선고 96나10449 판결은 분만비와 부모의 위자료(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는 인정했지만, 양육비와 교육비는 생명권 존중과 부모의 자녀 부양의무에 비추어 손해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아이의 존재 자체를 손해로 계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판례 전반에 깔려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다툴 여지는 어디에 있나
서울고등법원 2000. 9. 28. 선고 99나51588 판결은 의사가 기형아 선별검사의 한계와 더 정확한 다른 검사 방법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보면서도, 다운증후군은 임신중절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사유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모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법이 허용하는 사유에 해당하는 질환을 놓친 경우에는 부모의 결정 기회를 빼앗은 데 대한 위자료가 문제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또 양수검사처럼 몸에 바늘을 넣는 검사 과정에서 산모나 태아가 새로 다쳤다면, 이는 일반 의료사고와 같은 방식으로 따지게 됩니다.
낙태죄 조항 효력 상실 이후의 쟁점
헌법재판소는 2019. 4. 11. 형법의 낙태죄 조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2017헌바127) 2020년 말까지 법을 고치도록 했으나, 국회가 기한까지 개정하지 않아 해당 조항은 효력을 잃었고 2026년 현재까지 대체 입법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99년 판결은 '적법한 낙태결정권'을 기준으로 삼았으므로, 그 전제가 달라진 지금 법원이 같은 기준을 그대로 유지할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으로 이해됩니다. 다만 아이 본인의 청구를 부정한 부분은 낙태 허용 여부와 별개로 생명의 가치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상담 전 확인할 것
- 받은 산전검사의 종류·시기와 결과지
- 정밀 초음파 기록과 판독 소견
- 가족력이나 고위험 요인을 의료진에게 알린 기록(문진표 등)
- 의사가 권유하거나 설명한 추가 검사가 있었는지, 들은 말과 날짜 메모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사건의 결론은 개별 사실관계와 증거에 따라 달라집니다.
근거 대법원 1999. 6. 11. 선고 98다22857 판결, 서울고등법원 2000. 9. 28. 선고 99나51588 판결, 서울고등법원 1996. 10. 17. 선고 96나10449 판결, 헌법재판소 2019. 4. 11. 선고 2017헌바127 결정, 모자보건법 제14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