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료법 개정안 국회 통과 —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본 ‘응급실 뺑뺑이’ 개정과 환자·유족이 챙길 것
2026년 10월 1일,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막기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응급실에서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구급차가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을 줄이겠다는 취지입니다. 응급의학과 수련을 마친 의사이자 의료사고 사건을 맡는 변호사로서, 이번 개정이 환자와 가족에게 무엇을 바꾸고 무엇은 그대로 두는지 정리합니다. 2026년 10월 현재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했을 뿐 아직 공포·시행 전입니다.
개정안에 담긴 세 가지
보도된 개정안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받지 못하는 ‘정당한 사유’를 법률로 구체화: 예를 들어 시설·장비·인력 같은 응급의료 자원 중 하나라도 모두 쓰이고 있어 추가 환자에게 적절한 처치를 할 수 없는 경우가 여기에 들어갑니다.
- 받을 병원을 상황실이 지정: 중증 응급환자를 받을 병원이 빨리 정해지지 않으면 중앙응급의료상황실 또는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환자를 받을 병원을 지정할 수 있고, 지정된 병원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환자를 받아야 합니다.
- 의료진 형사처벌 감면을 의무로: 지금 법은 불가피한 응급의료 중 중대한 과실 없이 환자가 다치거나 숨진 경우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개정안은 이를 반드시 감경·면제하는 규정으로 바꿨습니다.
시행 날짜와 세부 기준은 공포되는 법률과 하위법령에서 정해집니다.
지금도 응급실에는 이미 이런 의무가 있습니다
개정 전에도 응급의료법은 응급실에 무거운 의무를 지우고 있습니다. 응급의료를 요청받으면 즉시 응급의료를 해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거나 피할 수 없습니다(제6조 제2항). 구급차로 환자를 옮기는 사람은 미리 병원의 수용 능력을 확인하고 환자 상태를 알려야 하며, 확인 요청을 받은 병원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고 받을 수 없다면 지체 없이 그 사실을 알려야 합니다(제48조의2). 병원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지체 없이 적절한 병원으로 옮기고 진료기록을 함께 보내야 합니다(제11조). 전원 판단 시점에 대해서는 응급실 처치 지연과 전원 칼럼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보도로 알려진 개정안의 핵심은 ‘어떤 경우가 정당한 사유인가’를 분명히 하고, 받을 병원이 정해지지 않을 때 누가 결정하는가를 정한 부분입니다. 기준이 법에 적히면, 나중에 “그때 정말 받을 수 없었는가”를 따질 잣대도 그만큼 분명해집니다.
형사 감면과 민사 배상은 다른 문제입니다
유족들이 가장 많이 오해할 부분입니다. 응급의료법 제63조의 감면은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형’에 관한 규정입니다. 병원과 의료진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책임은 민법의 불법행위 규정(제750조)에 따라 따로 판단합니다. 게다가 감면은 응급의료가 불가피했고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를 전제로 합니다. 형사 고소가 어떻게 끝나든, 진료 과정에 잘못이 있었는지와 그 잘못이 결과로 이어졌는지는 민사 절차에서 다시 따질 수 있습니다. 환자단체에서는 응급의료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다친 환자와 유족을 위한 국가 차원의 공적 보상체계가 이번 개정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응급실 기록에서 실제로 갈리는 지점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는 분 단위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응급실 사건도 시간 순서로 기록을 읽어야 쟁점이 보입니다.
- 도착에서 첫 진찰까지: 중증도 분류를 언제, 어느 등급으로 했는지, 상태가 나빠졌을 때 다시 분류했는지
- 검사에서 조치까지: 검사 결과가 나온 시각과 의사가 그 결과를 보고 조치한 시각 사이의 공백
- 받지 못한다는 결정: 그때 병상·장비·인력이 실제로 어떤 상태였는지, 그 이유가 기록에 남아 있는지
- 옮길 때 넘긴 정보: 다음 병원에 환자 상태와 그동안 한 처치를 제대로 알렸는지
마지막 지점은 판례로도 확인됩니다. 대법원 2005. 6. 24. 선고 2005다16713 판결은 바로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그렇지 않다고 잘못 판단해 응급수술을 할 수 없는 병원으로 옮기고, 옮기면서 처음 상태와 시행한 처치에 대한 정보도 주지 않아 수술이 늦어진 사안에서, 보낸 병원의 전원상 과실과 환자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원심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반면 같은 판결은 응급수술을 할 수 없는 병원의 의사가 전원 요청을 받으면서 보내는 의사에게 응급수술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받아들였다면, 더 구체적으로 캐물어 상태를 파악할 의무까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받은 쪽 의사의 과실을 인정한 원심 부분을 파기했습니다. 이 판결에서 환자 상태를 제대로 판단하고 정보를 정확하게 넘기는 책임은 보내는 쪽에 무겁게 놓였습니다.
다만 결과가 나빴다는 사실만으로 과실이 되지는 않습니다. 대법원은 의사가 환자 상황과 당시 의료수준에 따라 진료 방법을 고를 수 있고, 그 판단이 합리적인 범위 안이라면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과실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0다95635 판결). 그래서 응급실 사건은 “늦었다”는 느낌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 무엇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를 기록으로 짚어야 합니다.
지금 챙겨야 할 자료
- 응급실 진료기록 전체(중증도 분류 기록, 간호기록의 시각 기재 포함)
- 119 구급활동 기록 — 어느 병원에 몇 시에 연락했고 어떤 답을 들었는지
-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면 진료의뢰서와 옮겨 간 병원의 기록
- 가족이 기억하는 대기 시간, 들은 설명, 통화 시각을 적은 메모
필자 정일채 변호사는 법무법인 태신에서 의료 분야 변호사로 일한 뒤 응급의학과 수련을 거쳐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고, 2026년 10월 파트너 변호사로 태신에 다시 합류했습니다. (관련 보도 보기(글로벌에픽))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결론은 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2026년 10월 현재 국회 통과 후 공포·시행 전이며, 개정안 내용은 보도를 기준으로 정리했습니다.
근거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6조, 제11조, 제48조의2, 제63조, 민법 제750조, 대법원 2005. 6. 24. 선고 2005다16713 판결, 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0다95635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