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유증이 늦게 나타났다면 청구 기간은 언제부터인가 — ‘손해를 안 날’과 ‘현실화된 때’
의료사고의 피해는 사고 당일 모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술 직후에는 가벼운 증상뿐이었는데 몇 년 뒤 장해 진단을 받거나, 어린 시절 생긴 손상이 자라면서 비로소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때 가족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이미 기간이 지난 것 아니냐"입니다. 청구 기간의 출발점은 생각보다 섬세하게 정해집니다.
두 개의 시계
불법행위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시효(청구할 수 있는 기간)가 끝납니다(민법 제766조). 두 시계가 따로 돌고, 어느 하나라도 먼저 끝나면 청구할 수 없습니다. 늦게 나타난 후유증에서는 두 시계가 각각 언제 출발하는지가 핵심입니다.
10년의 출발점: 손해가 '현실화된 때'
대법원은 가해행위와 실제 손해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는 경우, '불법행위를 한 날'은 잠재해 있던 손해가 현실화된 때를 뜻한다고 봅니다(대법원 1990. 1. 12. 선고 88다카25168 판결 등). 의료사고에 적용하면, 수술한 날이 곧바로 10년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수술로 인한 손해가 실제로 나타난 때를 따져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실제 사건에서 '손해가 현실화된 때'를 언제로 볼지는 증거에 따라 달라집니다.
3년의 출발점: 손해가 현실화된 것을 '안 날'
3년의 출발점인 '손해를 안 날'은 막연히 몸이 안 좋다고 느낀 날이 아닙니다. 같은 88다카25168 판결은 손해를 안다는 것이 단순히 손해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행위로서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법원 2019. 7. 25. 선고 2016다1687 판결은 생후 15개월에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아이가 처음에는 가벼운 발달 지연만 보이다가 6세 무렵에야 장애 진단을 받기 시작하고, 이후 신체감정에서 인지장애 진단까지 받은 사건에서, 손해가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에는 손해가 현실화된 것을 안 날부터 시효가 진행한다고 보고 시효가 지났다고 본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사고 당시 나이가 어려 성장 중이었는지, 다친 부위가 뇌처럼 회복 여부를 일찍 알기 어려운 곳인지, 일정 나이가 되어야 전문 진단이 가능한지 같은 사정은 특히 신중히 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통사고 사건이지만 시효의 일반 법리여서 의료사고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이해됩니다.
예상하지 못한 손해가 새로 생기면
손해가 이미 드러난 뒤라도, 그때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후유증이 새로 생기거나 손해가 예상 밖으로 커졌다면 그 사실이 판명된 때부터 새 손해에 대한 시효가 진행한다는 것이 대법원 입장입니다(대법원 2001. 9. 4. 선고 2001다9496 판결). 기대여명(살 것으로 예상된 기간)을 넘겨 생존해 추가 간병비가 생긴 경우에도, 예측된 여명이 끝난 때부터 그 추가 손해의 시효가 진행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1. 7. 29. 선고 2016다11257 판결).
실무에서 다투어지는 지점
법원은 이런 시점을 증거로 판단하므로, 같은 사건에서도 병원은 이른 날짜를, 환자는 늦은 날짜를 주장하게 됩니다. 실무에서는 다른 병원에서 원인을 설명 들은 날, 장해 진단서가 나온 날, 신체감정 결과가 나온 날 등이 다투어집니다. 반대로 사고 직후 병원이 잘못을 인정하는 설명을 했다면 그때를 '안 날'로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출발점을 늦게 볼 수 있다는 판례는 기간이 지난 뒤의 마지막 논거로 생각하고, 안전한 날짜를 기준으로 움직이는 것이 원칙입니다.
기간을 지키는 방법
- 진단서, 판독지, 진료기록에 적힌 날짜를 모아 '언제 무엇을 알았는지' 시간표로 정리하기
- 기간이 임박했다면 손해액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먼저 소송을 내고 진행 중에 금액을 정리하기
- 내용증명 등으로 배상을 요구(최고)했다면 6개월 안에 소송 등 후속 절차를 밟아야 시효가 중단됩니다(민법 제174조)
- 병원이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문서를 써 준 경우 이는 시효 중단 사유인 '승인'이 될 수 있으므로 보관하기(민법 제168조)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청구 기간의 출발점은 사건의 구체적 사정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습니다.
근거 민법 제766조·제168조·제174조, 대법원 1990. 1. 12. 선고 88다카25168 판결, 대법원 2019. 7. 25. 선고 2016다1687 판결, 대법원 2001. 9. 4. 선고 2001다9496 판결, 대법원 2021. 7. 29. 선고 2016다11257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