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들은 숨진 60대 여성 환자의 유족입니다. 환자는 소변 색이 진해지고 황달이 생겨 대학병원을 찾았고, 복부 CT에서 췌장 두부(췌장의 머리 부분)에 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습니다. 종양은 간으로 가는 큰 정맥인 문맥과 상장간막정맥에 맞닿아 있었습니다. 이후 오른쪽 아랫배 통증으로 응급실을 거쳐 입원했고, 여러 검사와 협진을 거쳐 유문보존췌십이지장절제술(췌장 머리와 십이지장 등을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게 됐습니다.
수술 기록에 따르면 의료진은 배를 연 뒤 단단한 종양이 상장간막정맥과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수술 도중 보호자와 진행 여부를 상의했으며, 보호자는 의료진의 판단에 맡겼습니다. 이어 종양 주변을 떼어 내던 중 상장간막정맥으로 추정되는 부위에서 심한 출혈이 생겼습니다. 의료진은 혈관을 막고 봉합하며 지혈을 시도했고 종양을 잘라냈지만, 다시 확인해 보니 출혈이 일부 계속됐습니다. 결국 출혈 부위를 정확히 찾지 못한 채 지혈용 거즈로 눌러 두고 배를 닫았습니다.
환자는 중환자실로 옮겨져 혈압을 올리는 약물을 투여받았지만 반응하지 않았고, 수술 당일 밤 숨졌습니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인은 저혈량성 쇼크(피를 많이 잃어 생기는 쇼크)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이었습니다. 유족은 태신을 통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했습니다.
쟁점
다툼의 핵심은 수술 중 대량출혈과 그 뒤 지혈 과정에 의료진의 잘못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잘못이 사망으로 이어졌는지였습니다. 이와 함께 출혈 위험이 큰 환자에게 수술을 그대로 진행한 판단이 적절했는지, 수술 외에 다른 치료 방법을 설명했는지도 쟁점이 됐습니다.
병원 측은 절제가 가능한 췌장 두부암은 수술만이 근본적인 치료이므로 수술 결정은 적절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췌장암 수술은 원래 대량출혈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의료진이 조심스럽게 박리하고 혈관을 막아 단계적으로 봉합하는 등 주의를 다했음에도 불가피하게 출혈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수술 전에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태신의 조력
수술·마취·간호기록으로 출혈 경과를 짚다
태신은 수술기록지, 마취기록지, 간호기록을 분석해 조정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수술 중 출혈량이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늘어난 기록과, 출혈 부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즈만 덮고 수술을 마친 뒤 중환자실에서 저혈압이 이어진 경과를 정리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수술 부위 주변 혈관을 손상시켜 대량출혈을 일으킨 잘못, 지혈이 확실히 이루어졌는지 확인하지 않고 수술을 끝낸 잘못이 사망의 원인이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술 진행 결정과 설명의무 문제를 함께 제기하다
출혈 위험이 큰 상태에서 수술을 그대로 진행하기로 한 판단, 수술 외의 치료 방법을 고려하거나 설명하지 않은 점도 함께 문제 삼았습니다. 출혈 위험이 높았다면 수술을 강행한 판단이 잘못이고, 위험이 높지 않았다면 대량출혈은 술기상 잘못이나 미흡한 지혈 때문이라는 논리로 어느 쪽이든 병원 책임이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감정 결과에 대해 추가 감정을 요청하다
중재원의 감정서가 나온 뒤에는 의견서를 내 추가 감정을 요청했습니다. 환자의 암이 수술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는 병기였는지, 같은 진행 정도의 수술에서 대량출혈로 사망하는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종양이 크고 단단해 주요 혈관에 붙어 있으면 수술 중단도 고려할 수 있는지, 출혈 부위를 확인하지 않고 수술을 마친 것이 적절했는지 등을 따져 물었습니다.
사건의 결과
중재원 조정부는 중재원 감정 결과와 달리 의료진의 수술상 과실을 추정했습니다. 수술 도중 사망 원인이 된 증상이 생긴 경우, 의료상 과실 말고는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려운 사정들이 증명되면 과실을 추정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습니다. 수술 전 CT에서 이미 종양이 혈관에 인접한 것을 알았으므로 혈관 손상으로 대량출혈이 나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고, 출혈이 생긴 뒤에는 혈관외과 협진 등 더 적극적인 지혈을 시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채 출혈 부위를 확인하지 못하고 거즈로 덮어 수술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였습니다. 사망과의 인과관계도 인정했습니다. 반면 수술 방법 선택이 잘못이라는 주장과 설명의무 위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조정부는 유족에게 약 2,010만 원을 지급하라는 조정결정을 내렸습니다. 양측이 기간 안에 이의를 내지 않아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조정이 성립했고, 이 조정은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갖습니다.